문학 이야기/시조 평론 1

<시조미학> 2018. 봄호 계간평

poem264 2018. 2. 19. 16:16


시조미학계간평(2018. 봄호)

 

꽃의 이미지 그리고 변용

                                         권 혁 모

 

   꽃보다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면, 이는 불가능일 것이다. 꽃의 속성은 새 생명 탄생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심상의 내재적 변용(變容)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꽃의 이미지를 부정보다는 긍정 쪽으로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꽃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고무하며 또한 비유하고 있다.

   꽃말은 고금동서를 통하여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다. 꽃에 부여된 의미론적 상징성은 대륙을 넘었고, 이미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관념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겨울 눈은 벚꽃 같더니 / 금년 봄 벚꽃은 눈과 같구나 / 눈도 꽃도 모두 참이 아니련만 / 어이 마음은 찢어지려 하는가(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조국 해방을 기다리던 봄이었지만, 그 기쁨을 맞기도 전에 돌아가신 만해 한용운 의 시 벚꽃을 보며(見櫻花有感)가 풍전등화 같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옥중 시 한 편에 반하여, 이호우의 살구꽃 핀 마을은 봄날의 서정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이 되는가? 꽃그늘에 달이 오고 술 익는 봄 하루가 저무는 날, 어디든 자꾸만 들고 싶은 정겨움을 언제 다시 만나랴.

   “~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 물결같은 그리움이었다. ~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 몸부림쳐 새겨진 이름이었다.”는 이형기의 코스모스는 결국 자신이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어 /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 하며 코스모스를 통한 애타는 그리움을 고백하고 있다.

   눈부신 목련꽃을 바라보며 노래한 복효근의 목련꽃 브라자도 있다.

   “목련꽃 목련꽃 / 예쁘단대도 / 시방 /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 목련송이만할까 / 고 가시내 /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 내 다 알지 /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 눈부신 / 하냥 눈부신 / ” 

   꽃은 삶의 의미망을 집약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라는 한 정물의 외재적·내재적, 그리고 유형·무형의 속성이 우리의 상상력에 맞물려 유기적인 알레고리(allegory)를 형성을 하게 한다. 이런 가운데 여기에서 맞물려진 현상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있다.

   꽃의 시는, 외형에서 비롯된 생태학적 특성을 우리의 마음속 형이상학적 이데아로 끌어들여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흔히 관계 지어지는 꽃의 이미지는, 이미 고정관념화(fixed idea)되어 더 이상의 의미로 확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중(多衆) 혹은 누군가에 의하여 이미 규정지어진 꽃들의 은유법에서는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장미=사랑, 코스모스=순결, =성실·그리움·슬픔, 대나무=지조, 갈대=신의, 라일락=첫사랑, 매화=고결, 목련=순결·자애, 물망초=나를 잊지 마세요, 벚꽃=삶의 아름다움과 덧없음, 개나리=희망, 동백=정조·사랑등의 상징과 비유가 현대시(현대시조)의 주제에 근접할수록 시는 참신성에서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시인은 이러한 사은유(dead metaphor)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시의 정체성은 포(E A Poe)가 말한 아름다움의 운율적 표현이기 전에 셀리(P B Shelley)가 말한 상상력의 표현이다라는 쪽으로 더욱 치우쳐야 할 것이다. 상상력에 의한 참신한 표현의 필요조건은 사물에 대한 기존 관념의 탈피인 것이다.

  이미 관념화된 꽃의 이미지가 시를 쓰는 데 장애물로 놓여 있다면, 이를 떨치고 새롭고자 하는 시, 꽃의 시조가 지난 겨울호 시조미학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몸 져 누운 꽃이 더 붉어 젊은 영정 같다

 

그 누가 남겨놓은

쓸쓸한 물음표일까

 

세기의 죽음으로도

끄지 못 할 불길 하나

 

- 김 경 동백전문, (시조미학겨울호)

 

   김경의 동백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 여름날 빗속에 찾은 외딴 하늘공원, 친척 한 분을 먼 곳으로 보내려 애태우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때 차에서 내린 어린 아이가 엄마의 사진을 앞세우고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 꽃같은 여인의 사진 한 장에 굵은 빗줄기를 더하였다.

   시인은 그처럼, 너무 붉어 젊은 영정 같은 동백꽃을 시인의 가슴에 겹치고 있었나 보다. 영정이라는 과()의 인()은 무엇인가, 그저 쓸쓸한 물음표로 바라볼 수 없었던가?

   종장의 세기의 죽음은 극단의 가상현실이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마지막 자해행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끄지 못할 불길 하나라는 원관념을 독자에게 질문으로 남겨 놓았다.

   ‘몸 져 누운 꽃=동백꽃 낙화를 바라보며, 젊은 영정을 떠올렸고, 그 사연을 묻고 싶었고, 그렇지만 동백꽃 속에 숨겨진 원초적인 숙명을 헤아리며 관조하는 김경의 모습이 보인다.

 

 

가다가

다시 보면

이슬 문 고운 입술

 

날개 접은

작은 나비

단꿈을 꾸고 있네

 

발자국

조심스러이

살펴가는 저 바람

 

- 김경희 풀꽃 사랑전문, (시조미학겨울호)

 

   김경희의 풀꽃 사랑은 이름 없는 풀꽃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표면에는 이라는 유형의 식물과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인격 부여를 시도하였다. 그래서 지나다 다시 가만히 보면 이슬 문 듯 고운 입술을 발견한다. 풀꽃에 작은 나비가 앉아서 단꿈을 꾸고 있다. 이런 평화로운 새벽 들길이면 바람도 조심스럽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김경희가 차용한 풀꽃 사랑의 보조관념은 풀꽃나비바람이라는 흔히 그냥 보아 넘길 소재이지만, 원관념은 그 너머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위의 빈자 등 소외계층이거나, 우리가 돌보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통한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 추구인지 모른다.

   사물에 생명 현상을 이입하거나 인격화하여 실마리를 정겹게 풀어 가는 것은 시 기초이자 궁극이기도 하다. 동화의 해님달님이 그렇고, 어린이들에게 유행하는 상어 가족새요인형 등이 모두 이러한 기법으로 재미 요소와 함께 매시지에 유의미를 두고 있다.

 

 

꽃이 지고서야 문득 꽃을 보네

 

네가 떠난 뒤에 비로소 널 만났듯

 

향기만 남은 하루가 천년 같은 이 봄날

 

- 민병도 낙화(落花)전문, (시조미학겨울호)

 

   ‘개화의 반대어인 낙화는 네거티브의 자연 현상이자 새 생명의 약속이다. 전자는 환희와 희망의 정점이며, 후자는 절망의 끝부분이다. 사물의 이치는 언제나 일회성이지 않으며 끝없이 순환한다. ‘개화낙화, ‘낙화개화를 예비해 두고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민병도는 낙화에서 이별을 역설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초장에서 , 그리고 중장에서 를 연이어 만나고 있다. 여기에서 전자의 는 실존의 이며, 후자의 는 이상향의 라고 할 때 이 작품의 암시성은 다양하게 열려 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 되는 아이러니를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몹시 애태우며 기다리는, ‘하루=천년이라는 등식으로 봄날을 맞고 있다. 결국, 진정한 라는 존재는 보이는 현상에 있지 않고 가슴이라는 가상(假像)의 이데아에 깊이 감추어져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종장 부분 향기만 남은 하루가 천년 같은 이 봄날로 반전되는 유토피아는, 가슴에만 숨어 있는 라는 존재 때문일까? 허상(虛像)의 만남을 그리워하며 실상(實像)의 만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 낙화 같은 연기(緣起)를 떠올리게 한다.

 

 

하늘을 바라봄도

죄가 될까 두려운

 

눈뜰 수

없는 아픔

폭양 속 넌출거려도

 

살아 선

지울 수 없어라

가슴에 찍힌 사랑의 화인(火印)

 

- 이명희 능소화 연정전문, (시조미학겨울호)

 

   꽃이 귀할 한여름에 담장 타고 올라가 주황색의 열정을 쏟아내는 능소화, 그에게도 연정은 있었나 보다. 어떤 사랑의 아픔으로 가슴에 불도장을 찍었는가, 사랑은 죄까지도 모두 감싸 안아야 하는가?

   이명희의 능소화 연정은 읽는 이에게 저마다의 추억을 사색하라며 채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랑을 가슴 깊이 숨겨 둔 때문일까, 어떤 사랑이면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죄가 되는가? 눈부시게 젊은 태양의 계절 앞에서 능소화는 가슴에 불도장을 찍었다 한다.

   이 작품은 첫째, 단순히 능소화에 인격을 부여하여 별리의 아픔을 연출하게 하거나 둘째, 작품 속 화자를 통하여 필자의 정한(情恨)을 대신 진정코자 한다.

   시에서 중의법(ambiguity)이라는 복선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복선을 이룬 만치 의미 확장과 시의 깊이가 가능한 것이다.

 

 

아직 남은 달빛으로

바람 비켜서서

 

며칠째 뼈를 깎아

불면의 불 밝히고

 

골 깊은 슬픔 죄다 태울 순종의 젖은 꽃잎

 

 

고독한 담금질에

이젠 피멍이 들어

 

모두 떠안고서도

언제나 잔잔한 속

 

도도한 붉은 속울음 제 꽃대를 뚝 꺾다.

 

- 김세환 작은 슬픔에게-꽃무릇전문, (시조미학겨울호)

 

   가을 추석 무렵이면 붉게 만개한 꽃무릇에도 어떤 슬픔이 있었나 보다. 그 슬픔은 남은 달빛과 바람에 비켜서 있고, 뼈를 깎아 불면의 밤을 밝히게 되었던가? 그리하여 슬픔을 모두 태울 순종의 젖은 꽃잎 같은 것, 그런 것을 인생에 비유해도 될까?

   ‘불면’, ‘순종’, ‘고독’, 담금질‘, ’피멍이런 인고를 스스로 견뎌내며, 그래도 마음 애잔한 꽃무릇을 차분하게 그려 놓았다.

   김세환의 작은 슬픔에게-꽃무릇은 영광 불갑사의 황홀한 그 꽃무릇 풍경이 아니라, 그 꽃무릇을 대역한 우리의 삶이란 것도 결국은 순종의 젖은 꽃잎이었고 제 꽃대를 뚝 꺾어야하는 순리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 흐드러진 꽃무릇 배경 앞에서의 환희가 아니라 원초적인 삶의 아픔에 시인의 시선이 닿았다.

 

 

보채는 저승길에 멀고 먼 집 찾아간다

아장아장 눈에 피는 세 살배기 딸을

잊을까, 잊었겠는가

눈 뜬 채 육십여 년

 

잠시 다녀오마, 입은 채로 나왔다가

동강난 반도 땅에 텅 빈 길만 떠돈 아비

마지막 부른 이름이

목젖에 걸렸는데

 

저 벚꽃 뜻을 알아 잎잎이 풀어낸다

끝끝내 널 못 품고 모질게도 살았니라

피눈물 찍어 쓴 편지 네게 닿지 않는 오늘

 

- 이남순 벚꽃 추신전문, (시조미학겨울호)

 

   이남순의 벚꽃 추신은 벚꽃을 통한 한 가지의 변용이 가능하게 한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아비규환이었던 전쟁 당시의 흩어진 가족을 흩날리는 벚꽃에 대비하였고, 그 때의 벚꽃 이미지가 아버지로 대비된 현실의 벚꽃이 되어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의 가능한 가설은 당시 세 살배기 딸이었을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는 것과 그동안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것, 벚꽃 앞에서 그런 사연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벚꽃 추신은 이남순 자신의 이야기 여부와는 무관하게 진실성과 상상력이 더한 가작으로 공감을 주고 있다.

   시는 담고자 하는 내용이 현실과는 상이하게 비합리적이거나 무리할 수 있다. 실제의 자신이거나 타인의 경험 내지는 가설을 실존인 것처럼 꾸며 쓸 수 있다. 시의 진실성은 독자로부터의 공감이 가능한 창작이라 한다면, 벚꽃 추신역시 이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정양은 벚꽃길이 한껏 교태를 부리고 있다.

   “ ~ 사람 사랑하는 일도 그와 같다고 / 눈 감고 입 다물고 겨우내 / 묵은 벚나무들 줄지어 서 있던 길 / 보고 싶은 옷깃이나 꽁꽁 여미며 / 나는 그 길을 지나다녔네 // 그 길 그 하늘에 / 저 숨막히는 눈부신 꽃잎들 보아, / 무슨 독한 맘먹고 / 볼 테면 보라고 / 못 견디어 휘날리는가 / 다 들켜도 짓밟혀도 좋다고 / 벚꽃은 저렇게 / 휘날리려고 피는가보다

 

 

아흔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댁 담장 아래

찬 바람 속 매화가 화사하니 피어올라

죽음도 꽃 속에 묻혀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일가친척 모두 불러 소 잡고 돼지도 잡아

술상을 차려내고 화투판도 벌여두고

새도록 잔칫집인 양 얼굴들이 환했습니다.

 

이윽고 아끼시던 친정 조카 노랫가락에

슬픈 표정 하나 없는 꽃가마 타고 가셨는데

오늘은, 가지 끝 저 미소가 내 마음을 적십니다.

 

- 이양순 매화가 있는 풍경전문, (시조미학겨울호)

 

   이양순의 매화가 있는 풍경은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것 같다. ‘외할머니댁 담장찬바람 속 매화가 활짝 핀 추억의 배경으로 달려가게 한다.

   작품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생각하는 손녀의 마음을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디에도 슬픔을 직접 묘사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편에서 보이는 표현은 화사하게 꽃 핀 매화, 꽃 속에 묻힌 죽음, , 돼지 잡고, 술상, 화투판, 잔칫집, 노랫가락, 꽃가마, 미소 등, 슬픔과 그리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역설(paradox)이 더욱 공감을 불러오게 하였다. ‘죽음도그림처럼’, ‘초상집잔치집’, ‘슬픈 표정꽃가마등 모순어법(oxymoron)에 의한 역설은 감성적 진실을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가수의 과도한 정감으로 흐느끼는 노래보다, 정확하며 차분하게 전달하는 노래가 더욱 심금을 울리듯이, 문자로 전달되는 시는 더욱 그렇다. 외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얼마나 정겨웠을까? 그만치 외할머니 안 계시는 날, 손주의 마음은 더욱 그리웠고 또한 슬펐던 것이다. 그 속마음을 꼭꼭 감추어 두고 매화꽃 화사한 봄날의 풍정(風情)을 그림 그리듯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다.

 

   꽃의 이미지는 다양한 종류만치 여러 갈래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관념화되었거나 아니면, 서정적 인식의 변화만치 언제나 새로움을 시도 하고 있다. 화가도 마찬가지이지만, 시인은 시의 소재(素材)나 제재(題材)로 꽃을 사용할 때가 많다. 생활 주변과 맞물려 있는 보편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쉽다는 것은 함정이 따를 수 있다는 반증도 가능하다. 쉽기 때문에 치열한 시정신이 결여될 수 있고, 관념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적어도 이미지의 변용을 통한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또한 표현 대상을 시적 상상력에 의하여 유추(analogy)하고 재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시조가 참신한 현대시로 거듭나기 위한 시선(視線)은 시조라는 안이 아니라, 밖이어야 한다. ()라는 도도한 흐름 앞에서 갈 길 먼 시조의 향방은 시조시인들의 몫이다. 이 세상에 꽃이 피고 지는 한, 꽃의 시조 또한 피고 진다. 같은 꽃잎으로도 비 가림이 될 수 있고, 그리운 정한(情恨)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중국 당대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죽지사(竹枝詞) 두 번째 시의 한 부분으로 졸필을 맺는다.

    붉었다 쉬 시드는 꽃 그대 마음 닮았고 / 끝없이 흐르는 강물 내 시름 닮았어요

(花紅易衰似郞意 水流無限似儂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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