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야기/시조 평론 1

헛꽃(홍오선)

poem264 2021. 3. 26. 14:13

□ 시조21, <2020 내가 읽은 좋은 시조> - 권혁모

 

헛꽃

 

홍오선

 

 

단 한번

눈길에도

능소화가 피는구나

 

그 한밤

격정으로

시나브로 여위더니

 

비 온 뒤

담장 너머로

온데간데없는 꽃

 

ㅡ 『정형시학(2020, 가을호)

 

세상에서 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헛꽃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외연外延을 확장하여 한 시인의 사유를 객관화하고 있다.

꽃의 형이하학적 의미는 무엇보다 생식이다. 생명 탄생을 위한 고혹蠱惑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온갖 신비스러움의 요체要諦이기도 하다. ‘은 분명히 가시적인 존재이지만 홍오선의 헛꽃은 내재적인 대상이며, 그 실존의 꽃에 대한 부정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을 위한 강조이다. 마지막 구의 온데간데없는 꽃이라는 역설은 어딘가에 있음을 암시하게 한다.

여름날 담장 위에 피어난 주황색의 능소화, 이는 단 한 번의 눈길로 피어난 인연의 원점이 아니던가? 그 필연이라는 인연으로 핀 꽃은 칠흑 어둠과 공포로 휩싸인 격정에 여위어만 했고, 드디어 헛꽃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시조의 정체성은 이러한 단수의 탄탄한 긴장미에 있다고 한다면, 홍오선의 헛꽃은 생사生死를 넘나들게 하는 화두話頭가 이미지의 간섭 현상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또한 기승전결이 흩트림 없이 놓임은 그만치 단수의 품격이 온전히 완결된 반증이기도 하다.

화자만이 간직한 고뇌의 속마음을 에둘러 위무 받고자 하는 간절함이 돋보인다. 생로병사의 순리에 따른 꽃이 아니라, 한밤의 격정으로 여위다 사라진 헛꽃이기에, 더욱 헛꽃이 될 수 없는 역설이 가슴 적시게 한다.

이 작품의 연장선에 서정춘의 죽편竹篇 1-여행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 멀다 / 칸칸마다 밤이 깊은 / 푸른 기차를 타고 /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 백년이 걸린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대나무의 텅 빈 공간,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는 백년이 걸린다 했는가? 그런 먼 여행을 하며 홍오선 시인은 헛꽃을 못내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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